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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oN's Log/길은.

어느 항해

그래. 바람은 문득 불기 시작했다. 아마도 어딘가에서 나비가 파닥거렸었겠지.

그런데 바람을 제대로 탄 배에는 한량같은 이가 선장이었던 거다.

딱히 목적지가 있는게 아닌 그는, 바람의 흐름에 따라 단지 흘러갈 뿐인듯 보인다.

출발한 항구가 어딘지 가물가물한 이 배는 사방에 수평선만이 가득한 어느 바다에서 순풍을 맞고 있다.

선장은 문득 나침반을 본다. 

남쪽방향으로 가고싶은걸.

하지만 바람은 북서풍. 배는 남동쪽으로 쉬이익 간다.

미세한 각도가 틀어지면 한참 진행한 후에는 전혀 엉뚱한 곳에 있게 되는걸.

선장에겐 의지가 생겼다. 난 남쪽으로 가겠어.

키를 잡고 배의 방향을 조정해 본다.

그런데 그는 장거리 여행이 처음인, 아직 초보항해사. 배도 자그마 하다.

배는 선장 마음대로 가지 않는다.

바람은 변덕이 심해져서 선장에게 도전을 요구하고 있다.

초보선장.

남은 양식이 점점 줄어들고 물도 얼마 없다.

지도를 펴본다.

분명히 이곳쯤일텐데...

하지만 사방에 바다밖에 보이지 않는 이 곳에서는

바람에만 맏겨온 자기 배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지 못하는 선장.

가용 식량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선장은 이번 시행 착오를 통해서 많은 걸 배우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

시행착오를 겪고 배움없이 배 위에서 The End가 될 수도 있는거니까.

그가 지금 믿을 수 있는건.

나침반과

자기의 판단.

남쪽으로 정한 그의 판단과, 정확하다고 믿어야 할 나침반에 의해

그는 남쪽에서 가이아를 마주 할 것인가. 아니면 포세이돈과 함께 할 것인가.

궁금하다.

왜 남쪽으로 가겠다고 정했는지.

끝까지 계속 자기의 의지를 밀어 붙여야 할지.

아직 사그라 들기엔 너무나 강렬한 불꽃이

자기 마음 속에 살아 있음을

선장은 이제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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