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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oN's Log/육아

D-Day 출산 당일의 기억

2018.02.08. 17:44

아들이 태어났다.


아내가 임신해서 배가 불러오면서 출산을 위해 산부인과에 가고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까지 나는 그 이후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집에 아이를 데려오고부터 행복할 것만 같던 내 상상은 보기좋게 깨어지고, 밤에 잠을 설치고, 퇴근 후 저녁시간은 오롯이 아이에게 바쳐지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어느덧 3개월이 지나고, 언제부턴가 밤에 잘 깨지도 않으며, 부모에게 웃어주며 이쁜짓도 하는 아이가 마냥 사랑스럽기만 하다.


아이 엄마는 아이의 일과를 시간별로 기록해 놓고 있는데, 아이 아빠인 나는 아직도 아이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구나 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아이에 대한 기록을 해보려고 한다. 




 D-Day 


아내가 화장실에서 나오며 다급한 목소리로 산부인과에 가자고 한다.

뭔가 주르륵 하는 액체가 아래에서 나왔다면서 양수가 터진건 아닐까 걱정이 한가득.

때는 저녁 9시를 넘긴 시각. 산부인과 응급실을 통해 와이프가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밖 대기실에 앉아 불안해 하며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타지역에 거주하는 부모님은 내일이라도 방문하시겠다며 기차표를 알아보신다고 하였다. 검사는 10시를 넘겨 끝나고 아내가 나왔다. 양수가 아니란다. 자궁문도 아직 닫혀있고. 때는 출산일 3일 전. 그렇게 양치기소년같은 해프닝을 벌이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어머니가 전화하셔서 유도분만을 권유하였다. 


출산 예정일은 2월 10일. 설날연휴가 15일 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출산을 너무 기다리면 연휴와 겹칠 우려가 있었다. 2월 5일 월요일에 양치기 해프닝을 벌이고, 화요일에 담당 의사선생님과 면담 후 수요일에 유도분만을 하기로 했다. 

이미 비상사태 훈련을 한 번 했던 덕에 필요한 물품을 가방에 챙겨넣고 수요일 저녁 병원으로 향했다.

팔에 링겔을 달고 유도제를 투여받은 아내와 입원실에서 '이제 정말 애를 낳나보다' 하며 설렘 반 두려움 반에 아이를 상상하고 있었다. 한두시간 간격으로 분만실에 가서 아내는 검사를 받고 나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고를 계속 반복하였다. 유도제 효과인지 배가 아파온다고 하였다. 자궁문이 3cm 이상 열려야 무통주사를 맞을수 있다며 계속 걸으며 자궁문이 열리게 하라고 한다. 아내는 병원 안을 조금 돌아다녀보지만, 통증이 심한지 계속 끙끙 앓는다. 검사하러 가서도 무통주사를 못맞은 아내는 입원실에서 계속 신음하며 통증을 인내했다. 밤새 고생하다가 다음날 아침 7시가 되었을 때 진통이 너무 심해서 일단 분만실로 이동했다. 8시 50분 쯤 담당 의사선생님이 분만실에 들어갔다가 나오셔서 지금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아직 아기가 밑으로 안내려왔고, 2~3시간 후 아기가 내려오면 무통을 달 수 있다고 한다. 10시간 가량을 고생했는데 무통도 못단다니. 아내가 너무 불쌍했다. 


점심때가 되어서 부모님이 도착하셨다. 다행히 아내는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었고(당시를 회상하면 잠시 천국을 맛보았다 한다.) 분만실에서는 이제서야 아빠를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아내는 침대에 누워서 기력이 너무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입술이 너무 말라서 큰 거즈에 물을 묻혀 조금씩 입을 축여주었다. 1시쯤 부터는 다시 진통이 시작되었다. 무통주사를 놓으면 힘을 줄 수 없어 아기가 안나온다면서 고통을 감내하는 시간이었다. 한시간 간격으로 담당 의사선생님이 다녀갔고, 4시에는 한시간만 더 기다려보고 계속 아기가 안내려오면 제왕절개를 해야겠다고 한다. 

수술 보다는 자연출산을 하고싶었던 우리이기에, 왠지 청천벽력같았던 말씀.


한시간이 더 흘러 5시가 되었다. 뭔가 그 전과는 다른 극심한 통증이 오는듯 했다. 주기적으로 아내가 힘을주고 쉬고 힘을주고 쉬고 반복했다. 의사선생님이 오셨는데, 내진해보고 나서 환호성(정말 말그대로 환호성. 브라보!)을 지르셨다. 아기가 많이 내려왔고 이제 출산을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아내는 정말 몸을 비틀듯이 힘을 주고 얼굴이 터질듯이 벌개 지기도 했다. 도와주는 간호사선생님이 얼굴쪽으로 힘주지 말고 아래로 힘주라고 계속 컨트롤을 해주었다. 잘못하면 얼굴에 실핏줄 터진다고. 말을 들으면서 그게 쉽게 되는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아내는 잘 해냈다.


5시 20분 쯤 수술용 도구들이 세팅되고 나는 분만실 밖에 서있으라고 했다. 

의사쌤과 몇명의 간호사쌤들이 들어가고 계속 힘주는 소리와 의사쌤의 더!더!더! 하는 소리가 섞여서 밖으로 들려왔다. 30분쯤 나를 불러서 들어가보니 간호사쌤 두분 정도가 아내 배를 누르고 있고 밑에서는 의사쌤이 계속 아내를 독려하고 있었다.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의사쌤이 뭔가 쭉 늘어진 고무인형 같은거를 밑에서 쑤욱 끄집어 내었다. 아. 순간 정말 애가 나온건가? 의심할 정도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기가 맞았다. 

뒤통수가 위로 길쭉하게 생긴 외계인 같은 형태로 그렇게 우리 아들과 첫 대면을 했다.

탯줄을 집게 두 개로 집은 다음 그 사이를 나보고 자르라고 한다.

나는 으어어어어어 하면서 가위로 탯줄을 자르는데, 생각보다 탯줄이 탱탱하고 질겨서 쉽게 잘리지는 않았다. 아기는 잘려진 탯줄을 달고서 울음을 터뜨렸다. 



아기는 바로 엄마 품에 안겨졌다. 캥거루케어라고해서 엄마 살과 맞닿게 해서 아이를 정서적으로 진정시킨다고 한다. 아이 입안에는 양수가 가득한지, 간호사쌤들이 수동 석션으로 계속 양수를 빨아내었다. 아기는 엄마 젖냄새도 맡고 살냄새도 맡으면서 한동안 그렇게 안겨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분만실 내부도 어둑어둑하게 해놓고 아이의 시각을 자극시키지 않도록 배려했던 것 같다. 한동안 안고있다가 간호사쌤이 아이를 씻기기 위해 데려갔다가 아이는 말끔해진 얼굴로 다시 우리와 만났다. 



2018.02.08. 17:44

그렇게 우리 아기가 태어났다.






초보아빠를 위한 팁 - 출산일


1. 와이프가 챙겨놓은 짐을 빠짐없이 챙겨서 병원에 간다.


2. 병원 입/퇴원 관련 실무적인 업무를 해야한다. 

 - 병실의 선택(1인실 or 2인실 or 6인실 이상)

 - 선택검사에 대한 결정(청력검사, 소화효소검사 등 돈나갈데가 의외로 있다)

 - 우리병원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무통주사 놓는 수액줄을 따로 사오라고 시킨다(1만원)


3. 임신 출산 관련 서적

 - 처음 맞는 출산이라 어리버리 할 수 밖에 없다.

 - 도서관에 가면 관련서적이 많이 있으니 미리미리 공부하고, 출산당일에도 한 권정도 챙겨가면 심신의 안정을 약간 얻을 수 있다.


4. 새 식구를 맞는 중요한 날임을 다시 한 번 인식한다.

 - 뭘 하든 와이프에게 점수따기는 힘들 것이다.

 - 최소한 나중에 서운한 기억으로 남을 말과 행동은 삼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