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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제비를 기르다 - 윤대녕




"여행가고싶다-"
"어디 가고 싶은데라도 있어?"
"응- 강화도. 강화도 가봤어?"
"가보긴 했는데... 무지 옛날에. 강화도는 왜?"
"가보고 싶어서. 너 윤대녕 알아? '제비를 기르다'라는 단편집이 있지.."



그렇게 알게된 윤대녕. 그리고 『제비를 기르다』.


윤대녕님의 제비를기르다 라는 책은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처음 연 이란 작품을 시작으로 제비를기르다, 탱자, 편백나무숲 쪽으로, 고래등, 낙타주머니, 못구멍, 마루 밑 이야기...






로드무비란, 여행하는 과정에서 겪는 이야기들을 담은 영화 라고, 조인성이 신민아에게 이야기 했던가? ('마들렌'에서.)

이 단편집들중 몇몇 작품들은. 그렇게 로드무비같이. 로드소설 같았다. 뭐 주인공이 직접 짐싸들고 돌아댕기는 장면은 많진 않지만.
'연' 에서는, 북한산을 배경으로, 매주 금요일 마다 북한산을 오르는 남자가 나오고.
'제비를기르다' 에서는 주인공의 고향인 강화도로 여자친구와 함께 갑자기 떠난다.
'탱자' 에서는 주인공 고모님이 강원도에서 경주를 거쳐 제주도로 여행을..
'마루 밑 이야기' 에서는 어떤 밤에 문득, 강원도로 차를 몰며 떠나고, 돌아오는 길에 양떼 목장에 들린다.



모든 이야기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남녀가 등장하기도 하고, 아버지의 다른 여자도, 친구도, 오랜만에 연락온 고모도.
주제는 사랑이기도, 죽음이기도, 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삶 에 관한 성찰이라고 느껴진다.
깊이 있는 성찰.

빨리 읽을 수도있는 책이지만, 며칠에 나누어 이 책의 이야기를 들었다.

담담한 서술들이 주는 담백함.

한 편 한 편 읽어 나갈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못구멍이 남은 것 처럼 퀭 하니 허전하기도 하고, 코끝이 찡하기도 하고..
한 편 읽고난 뒤 책을 덮고 눈을 감고 그 이야기들을, 그 표현들을 음미해 보는건.
참 오랜만인거 같기도 하고 처음인거 같기도 하고. 좋다.


p.23

"미안해요. 하루 사이에 남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이렇게 많이 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남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가까운 사이에서는 그런 말을 잘 쓰지 않죠."
"그럼 뭐라고 하는데요?"
"차라리 고맙다고 하죠."
그녀는 공허한 표정으로 웃었다.
"고맙다는 말 듣고 싶어요?"
"아뇨, 미안하다는 말이 듣기에 편하다는 뜻입니다."


p.32

한참 있다가 해운이 말했다.
"부탁이 있는데, 다시 만나게 되면 정연이한테 미안하다고 전해줘."
"그럴 일이 있을지 모르겠군. 그리고 만나게 되더라도 그 말은 전하고 싶지 않은데."
"하긴 내가 직접 해야겠지."
"그게 아니라, 미안하다는 말은 실수로 남의 발을 밟았을 때나 하는 말이잖아. 듣기에 따라서는 욕이 될 수도 있다는 거지."
음, 하고 해운이 물속에서 몸을 꿈지럭거렸다.


p.56

나는 문희에게 그동안 내 인생에 일어났던 일들을 양파껍질 벗기듯 하나씩 얘기하고 있었다.
그러자니 사이사이 코가 매워졌다.


p.63

그랬다. '문희'는 그 자리에 아직도 남아 있었다. 반가움에 앞서 코끝이 시려왔다.
그와 함께 가슴에 쌓였던 그리움이 세차게 목울대로 차올랐다.


p.68

교사임용고시를 준비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문희는 가끔 양구로 면회를 다녀오는 눈치였고 물어보면 구태여 숨기지도 않았다.
나는 썩어가는 감자처럼 마음이 차츰 병들어가고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문희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없었고 방황을 거듭하면서도 체념에 이르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조금씩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아침마다 눈을 뜨고 거울을 바라보면 늘 낯선 자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렇듯 남극과 북극사이를 번갈아 오가며 나는 마지막 학기를 보냈다.


p.186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갖는 기대와 희망의 대부분은 알고 보면 타인에게 애써 요구하고 있는 것들이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상대를 객관적인 타인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흔히 부모라고 하는 사람들이 또다른 타인인 자식들을 위해 출가를 시킨 뒤에도 다 늙어서까지 한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보면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적어도 이미 윤리적 사명은 완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것을 일방적으로 의무로 평가하고 때로 가혹하게 폄하하고 더한 요구를 하게 될 때 그들 몫의 설자리는 그만큼 옹색하고 누추해지게 마련이다. 이것이 내가 그를 통해 스스로 깨우친 삶의 단순한 진리 중 하나다.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플래그 테잎을 붙이며 표시를 하기시작했는데. 포기했다.
그렇게 붙이다 보면 책에 온통 테잎이 난무할거 같아서.

나중에 다시 읽을 때에, 왜 이게 이렇게 마음에 와 닿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2009년의 가을 초입에 서있는 지금의 나에겐, 이 책 한구절 한구절이 모두 소중했다 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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